에세이 공모전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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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의 어른 박우영(박우영)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 가’
고등학교에 들어오며 삶에 대한 고민이 깊어 졌다. 고등학교 3학년, 성인의 문 앞에서 마음이 조급할 때 쯤 ‘어른 김장하’를 만났다. OTT 플랫폼에서 처음 이 다큐멘터리를 보았을 때, 사람은 어느 정도 나이를 먹으면 어른이 되는 것 아닌가? 라는 생각을 했다. 제목 그대로 김장하의 인생이야기였다. 다큐멘터리의 첫 장면에 등장한 사람이 나이도 어리고 담배도 피고 있었기에 약간 실망하며 의아해 했다. 그런데 그 사람은 취재기자였다. 김장하 선생님이 한사코 취재를 거부해 주변인들의 인터뷰로 진행한다는 이야기였다. 남에게서 듣는 김장하의 인생 일대기인 것이다. 새롭고 한편으로는 놀랐다. 그 분이 궁금해지며 ‘숨은 영웅’같은 느낌이 들었다. 막상 김장하 선생은 그리 멋있지도 대단해 보이지도 않는 후줄근한 할아버지의 모습이었다. 진주에서 60년 동안 남성당 한약방을 운영하였는데 그 곳은 약 값이 저렴한데도 불구하고 좋은 약재를 사용하고 치료도 잘해 많은 이들이 새벽부터 찾아와 줄을 서곤 했다. 약방은 그렇게 번 돈을 고스란히 지역의 어려운 사람이나 단체, 교육사업에 사용하였다.
어른 김장하를 보던 중 갑자기 문형배 헌법재판관이 등장해 깜짝 놀랐다. 알고 보니 문형배님도 고등학교 때부터 대학생, 고시 패스할 때까지 학비와 생활비를 10년 간 후원 받았다고 한다. 문형배님이 사법고시에 합격하고 김장하 선생을 찾아 감사함을 전했더니 김장하 선생께서 “나에게 고마워 할 필요는 없네. 나는 이 사회에 있는 것을 자네에게 주었을 분이니 갚으려거든 내가 아닌 이 사회에 갚게”라고 하셨다고 한다. 문 재판관께서는 그 말을 전하며 그 때의 감정이 다시 되살아났는지 눈물을 훔치며 한 동안 말을 잊지 못하셨다. 나도 감동을 전달받은 듯 코 끝이 찡했다.
김장하 선생은 많은 선행을 하고도 자만하거나 남에게 알리지 않았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과 많은 진주시민들이 김장하 선생의 다큐를 찍는다니까 한 마음 한 뜻으로 그의 선행을 알리려 흔쾌히 인터뷰에 참여하였다. 그런데 김장하 선생은 정작 본인에게 쓰는 돈은 거의 없었다. 승용차는 물론 번듯한 양복 한 벌이 없었다. 나는 이 사람을 보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그냥 흘러가는 대로 살자’라는 내 인생의 모토가 바뀌었다. ‘사회에 도움이 되는 부끄럽지 않은 어른 되기’로. 김장하씨 만큼 대단한 어른은 아니어도 내 위치에서 만큼은 멋진 어른이고 싶다.
사실 나는 애니 덕후이다. 특히 일본 애니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관심을 가지고 좋아하기 시작했다. 중학교 고등학교에 올라가면서 그 마음은 점점 더 커졌다. 중학교 시절에는 좋아하는 캐릭터의 굿즈를 들여와서 원하는 팬들에게 판매해 용돈을 벌었다. 한편 고등학교 1학년부터는 만화가가 되어 일본으로 가기 위해서 미술을 시작했다. 그림 그리는 것도 처음엔 힘들었지만, 점점 실력도 향상되고 그림을 그려는 것도 즐거워졌다.
그런데 고등학교 3학년 초 내가 관심 있던 것은 그림을 직접 그리고 사람들에게 전하는 게 아니라 일본의 문화와 언어라는 것을 알게 된 순간 그토록 간절한 마음이 식어버렸고, 학원을 그만두었다. 미술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못 할 것 같았는데 오히려 더 즐거웠고 마음도 가벼워졌다. 그러다 우연히 학교 게시판에서 일본 여행 프로젝트를 보게 되었다. 내가 일본문화에 한 발짝 더 다가갈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일본문화에 대해 어릴 적부터 관심이 많았지만, 단 한 번도 일본에 가보지 못했다. 주변에서 오사카에 다녀온 분들이 오사카는 일본의 전통과 현대가 조화롭게 잘 어우러져 훌륭한 문화와 볼거리, 먹거리가 풍부한 곳이라고 하였다.
이번 프로젝트에 참가할 수 있다면, 그동안 간접적으로만 체험하고 동경해 오던 오사카를 직접 경험하며 일본과 관련해서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이를 위해서는 어떤 노력들이 필요한 지에 대해 좀 더 깊이 있게 고민하는 시간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박우영이 미래에 당차고 멋진 어른이 될 기회를 잡았으면 좋겠다.